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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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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견 용이 
  • 이기홍
  • 승인 2024.05.25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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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前 목포교육장

노래비 정원에서 웬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쳤다. 누런 털은 풍성하고 몸집은 작았으나 나이는 들어 보였다. 목줄도 없었고 눈빛은 무언가를 갈망하는 모습이었다. 손을 내밀자 잡히지는 않았다.

멀지 않은 학파 낚시터에 온 누군가가 버리고 간 것임을 직감했다. 요즘 들어 부쩍 낚시터에서 버려진 개가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집에 유기견 출신 묵이와 깜이가 있지만 데리고 갈까 하다 중단했다.

몸집이 크게 자라면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돌아서려니 추운 날씨에 바라보는 모습이 맘에 걸렸다. 사실 우리 마을에는 큰 개가 네 마리 있었다. 그중 한 마리는 무서운 사냥개였는데 많은 문제점을 알고도 키우기를 고집하다 결국 주인이 개집을 청소하는 틈을 타 뛰쳐나와 지나가는 나에게 달려들어 엉덩이를 상처가 나도록 물은 적이 있다.

문제가 될 수도 있었지만 그 개를 내보내는 조건으로 조용히 끝내기도 했다. 그래 나는 큰 개는 유난히도 싫어한다. 돌아올 시간이 되어 개 이야기를 하자 아내 역시 무척 싫은 내색이었으나 노래비 정원 앞을 지나고 있을 때 누런 개는 그 자리에 그대로 쪼그리고 앉아서 나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이대로 두다간 오늘 밤에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내와 함께 개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왔다. 마당에 놔두니 활발해지더니 잔디밭에 똥을 누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 똥을 먹어치웠다. 놀라웠다. 무슨 사연이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보듬어 묵이와 깜이에게 데리고 가 오늘 밤 잘 지내야 한다고 신신 당부했다. 몇 번 냄새를 맡더니 내치지는 아니했다. 

다음날 집에 와 보니 적응도 하고 먹이도 먹었는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철물점에서 사 온 목줄을 달아 집을 배정했고 용의 해에 나에게 왔다고 용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조금 있으려니 이장 댁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 이장 댁이 온 까닭이 다른 데에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용이 상태를 살피러 오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 집에 유기견이 들어왔음을 다른 분을 통해 전해 듣고 보러 온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우리 집에는 이미 두 마리가 있고 해서 아내에게 말하고 주기로 마음먹었다. 이장 댁이 직접 주라고 말을 못 하는 것 같아 새로 산 목줄을 채워 이장 댁이 자기 집을 비운 사이 끌고 가자 가지 않으려고 몹시 버텼다. 하는 수 없어 보듬어 이장 댁 개집에 넣어 주었다.

주변을 청소하고 임시로 밥을 주고 물까지 주고 나오려니 허전하기까지 했다. 쓰다듬어 주니 만난 지 이틀도 덜 된 용이가 애처롭게 쳐다보았다. 이장 댁과 이장은 용이의 입주에 대해 무척 만족해했다. 그 뒤로도 이장 댁에 들러 용이 배를 쓰다듬어 주었다.

날이 갈수록 잘 적응하고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담 너머로 손짓을 하면 오래도록 멀어져 가는 나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렇게 용이는 아시내에서 새로 적응해 자라고 있다. 

요즘 우리 주변에 유기견(遺棄犬) 문제가 심각하다. 유기견은 영어로 avandoned dog라고 하는 데 길을 잃고 헤매는 개,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를 뜻한다. 길고양이라는 말은 있지만 길개라는 말은 없는 것을 보면 개는 길에 버려지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개가 버려지는 경우는 대소변을 못 가린달지, 짖는 달지, 피부병이나 질병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그러나 개의 수명이 대략 15년에서 20년 정도인데 한 살 정도에 버려진 개가 유기견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귀여움이 없어져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는 것 같다. 결국 기를 여건이 안 되는 데도 예쁘니 기르고 싶어 하는 이기심이 유기견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보인다.

유기견으로 신고하면 보호소에서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다, 입양할 사람을 찾고, 입양이 안 될 경우 대부분 안락사를 시키고 있다고 한다. 2023년 한 해 유기견은 6만 마리로, 안락사 시키는 데 약 100억 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는 통계에 잡히는 숫자이고 실제로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강아지 장례는 기본 장례의 경우 몸무게 5킬로 미만은 평균 20만 원 대이다. 프리미그 장례는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 내외의 비용이 들고, 봉안당 안치 비용은 신규인 경우 30만 원 내지 50만 원, 연장은 20만 원 내지 40만 원이 든다. 얼마 전에는 목줄 없이 차에 달려든 개가 죽자 개 장례비를 달라고 요구한 일이 벌어져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는 부모님 살아생전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 방울이 이야기를 써서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상도 타고 그 유명세로 도교육청에서 각종 연설문을 쓰는데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또 그 일이 적지 않는 도움을 줘 승진도 했다. 객지에 나가 사는 나를 대신하여 고향 집을 지키면서 늙으신 부모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개에 대한 고마움을 쓴 수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집 출신 방울이가 아닌 유기견 출신 묵이와 깜이가 수필 대신 나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언제나 내 곁에서 재롱을 피우고, 작은 몸집으로 항시 나를 살피고, 자주 비우는 시골집을 지켜낸다.

아시내로 흘러든 유기견 출신 여러 개들은 이 골목 저 골목에서 어르신 반려인의 외로움을 씻어내느라 오늘도 꼬리를 흔들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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