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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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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에 그 딸
  • 장옥순
  • 승인 2025.01.06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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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순∥교육칼럼니스트

"악의 잎사귀를 천 번 잘라내기보다 악의 뿌리를 한 번 뽑는 것이 낫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금 대한민국은 막강한 권력을 쥐고 저항하는 거대한 악의 뿌리를 뽑아내기 위해 분투하는 중이다. 지혜도 실력도 없는 사람을 용병으로 끌어들여 온갖 추문을 달고 사는 아내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용렬하다 못해 추한 자를, 권력에 눈 먼 장님무사를 지도자로 내세운 한심한 정당이 저지른 범죄로 세계적 이슈가 되었다.

대한민국 역사에 가장 부끄러운 대통령으로 남을 윤석열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지지하는 강성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온갖 광대놀음에 빠져 있는 자들에게 분노한다. 이는 일제식민 정치에 부역한 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고 남겨둔 악의 뿌리가 그 근원이다. 더 나아가 전두환 정권에 빌붙은 자들의 후손들이 요직에 앉아 매우 당당하게, 애국자인 척 칼날을 휘두르고 있지 않은가.

나는 1980년대에 행정공무원으로 면사무소에 근무한 적이 있다. 모내기 철이 되어 비상근무 중이라 아침 7시에 출근하여 민원실을 정리하던 날이었다. 아침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2시간이나 일찍 출근한 날이었다. 모내기 철이 되면 항상 그랬다. 그렇다고 시간외 수당을 주던 시절도 아니었다.

출입문 쪽에서 "뭐 이따위 면사무소가 있어!"  하고 날카롭게 소리 지르던 사람. 그는 44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모습이 영상처럼 뚜렷한 잔상으로 남아 있어 놀랍다.   알고 보니 그 양반은 1984년 부터 전남도지사직을 수행한 전석홍씨였다. 내가 근무했던 1980년 당시의 직책은 모르겠고 (중앙부처 고위공직자로 추정) 수행원과 같이 왔지만 아무도 그를 몰라본 것에 화가 났던 것. 그의 언사는 요즘 말로 하면 갑질이 분명했다.

벗어진 이마에 키가 작달막해서 더 눈에 띄었다. 아마 그날 유난히 키가 크고 조용했던 우리 면장님은 혼비백산 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버럭 소리치던 한 문장은 이렇게나 또렷하다. 다른 기억은 사라지고 없으니 그날의 뒷 이야기는 아예 기억조차 없다.

그는 행정부의  고위 공무원으로 순시하는 중이었을 것이다. 출입구 쪽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 공무원들이 "안녕하세요?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라고 일상적인 인사는 건넸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속을 밝히면서 일찍 나와서 수고가 많다며 격려하는 게 도리가 아닌가. 자신이 높은 자리에 있는데 몰라본다고 버럭질을 해야 되겠는가. 그 당시에 나는 그가 누군지 관심도 없던 때였다. 그는 전두환의 그늘에서 한 자리 얻은 것뿐인데!

그런데 놀랍게도 최근 그의 딸의 언사가 놀라워서 또 한 번 기가 찼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전석홍의 딸인 국민의 힘 전주혜 전 국회의원이 "유혈 사태도 안 났는데 무슨 내란이냐!" 라고 말한 대목이다. 그는 서울대 졸업에 판사 출신 21대 국회의원이었다.

전두환 치세에 승승장구한 아버지 덕에 최상의 교육과 환경의 혜택을 받으며 모든 것을 다 누리면서도 국민을 위한 지혜는 갖추지 못한 듯 억울하고 화난 국민에게 언어폭력으로 갑질한 것이 아닌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니 같은 호남인(아버지는 영암, 딸은 광주)으로서 부끄럽다.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적반하장도 모자라 음해와 편법, 선동질로 국가를 도탄에 빠뜨리고도 사죄할 줄도 모르는 내란동조 대열에 호남인인 전주혜 덕분에 장기기억에 잠든오래 전 전석홍까지 불려 나오고 말았다. 그러니 학벌과 명예로 포장되어도 그 본성과 인품까지 위장술로 감출 수 없는 모양이다. '서울대-판사-국회의원-변호사' 로 이어지는 초호화 이력이 '비상계엄' 이라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본색이 드러났으니!

오죽하면 2025년 새해의 희망사항 1순위가 "윤석열 파면" 이라고 쓴 초등학생의 기사까지 나왔다. 초등학생조차 아는, 불의를 저지르고도 안하무인으로 뻔뻔한 낯짝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정치인을 비롯해 그 하수인들의 면면이 보기 싫어 뉴스조차 꺼리게 되었다. 새해가 왔건만 마음은 그 어느 해보다 어둡고 슬프고 걱정이 많다. 괜히 아픈 것만 같고 몸도 무겁고 매사에 의욕이 없고 허무하다.

그 와중에 너무나도 슬픈 제주항공 사고가 준 충격은 필설로 형언키 어렵다. 내가 겪은 사고도 아니건만 뉴스를 볼 때마다 흐르는 눈물과 허무함으로 날마다 한숨으로 지내며 우울감이 엄습하여 힘들다. 세월호의 충격으로 오랜 동안 힘들었는데, 이태원 참사를 보며 또 몇 달을 우울해 했는데, 선량한 시민들이 왜 이토록 슬픈 일을 겪어야 하는지 화가 치밀어 오른다. 불의한 자들은 저토록 용감무쌍하게 반격하고 큰소릴 치고 있는데!

눈물과 한숨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으니 집단적인 트라우마로 시름시름 앓는 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비상계엄을 보고 놀라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제주항공 사고는 비상계엄보다 더 가슴이 아파서 순간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곤 한다. 그러니 제발, 사고 순간을 영상으로 내보내는 일만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뇌리에 남아 무한반복 되고 있으니! 더 나아가 유가족을 비추거나 인터뷰하는 영상도 내보내지 말았으면 한다. 

사고가 난 지역을 찾아가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기사 역시 문제성이 많다고 본다. 남은 유가족에게도 상처고 보는 이들도 마음이 아프다. 그렇게도 쓸 기사가 없단 말인가! 쓰고 싶다면 이 사고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할 방법과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발굴할 일이다. 슬픔을 안주 삼아 감성에 기대어 클릭수를 높이는 얄팍한 행위를 지양하시라!

심지어 대가족이 숨진 지역을 찾아가 홀로 남은 반려견 사진까지 찍어 눈물 장사를 하는 기사에 울면서도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 반려견을 기자가 책임질 게 아니라면 어쩌자는 건가. 슬픔과 절망에 젖은 보통 사람인 우리들 가슴을 더 찢어지게 하여 얻을 게 뭐란 말인가. 

비행기에 관해 아는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저런 국내외 기사를 종합해보면 이번 사고는 분명히 인재라고 생각한다. 조종사의 무리한 운행시간이 그렇고 정비사들이 꾸준히 퇴사하는 회사였으니 제대로 된 정비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  심지어 같은 기종의 비행기가 승객을 실은 상황에서도 엔진 점검을 받았을 정도로 다른 항공사보다 잦았다고. 인건비(정비사 줄이기, 조종사의 잦은 운항 등)를 아껴 수익을 내는 구조였다면 언제든 터질 사고인 셈이다. 

2024년 말, 우리는 역대급 불행한 참사를 한꺼번에 두 가지나 겪었다. 무지몽매한 대통령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비상계엄, 179명의 귀한 생명을 앗아간 제주항공 참사는 온 국민을 비탄에 빠뜨렸다. 그 상처는 오래 갈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우리 국민은 그 상처를 딛고 분연히 일어설 것이다. 오히려 옹이를 만들어 더 강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비상계엄 사태는 악의 뿌리를 감추고 암약해 온 '악의 평범성' 을 지닌 얼굴로가짜 지식인과 정치인들의 정체를 까발려 주었으니 다행이다. 제주항공참사는 더 큰 불행을 막는 기폭제가 되어 돈에 눈 먼 기업과 오너에게 회초리를 들 것이니 이것 또한 전화위복이 되리라 확신한다. 

온 세계인이 위기를 극복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정능력에 감탄하고 있다. 불의한 세상과 지도자, 정치인, 연예인을 향해 현명하게 지혜롭게 멋지게 한 방을 날리는 해학을 지닌 젊은이들에게 환호하고 있다. 수십 년 깊게 뿌리 내린 악의 뿌리는 잎사귀를 자르고 뿌리를 향해 끊임없이 삽질하는 '깨어있는 시민, 행동하는 양심'을 지닌 대다수 시민의 힘으로 잘라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악의 뿌리를 뽑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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