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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glass ceiling)에서 동터오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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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glass ceiling)에서 동터오는 아침
  • 이기홍
  • 승인 2012.06.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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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목포교육지원청 교육장

6월 16일 토요일 아침, 개회가 선언 됐다. 전남초등여교장협의회 이정희 회장은 소녀시절 웅변으로 다듬어진 목소리에 경륜을 착색하여 제 14회 한국초등여교장협의회 하계연수의 개막을 알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여교장들은 어느 사이 소녀가 되어 박수와 환호로 응답했다.

식전 행사로 여교장들은 이미 출렁거리고 있었다. 유달초 합창단의 목포의 눈물, 목포시립국악단의 쑥대머리 남녀상열지사 무용, 그리고 짙은 색소폰 연주와 동료의 흐드러진 노래로 인해 여교장들은 지나온 교직생활을 돌아보며 항구목포가 주는 갯내음에 젖어있었다.

한 자도 흩트리지 않았던 교직윤리 헌장 낭독은 그 자체가 윤리였다. 대회장의 참석자 소개가 있을 때마다 여성 교육리더들은 체면도 잊은 채 환호로 환영과 지역세를 나타냈다. 대회장의 강단진 대회사와 전국회장의 애교스런 인사말이 묘한 대조를 이루면서 연수회 분위기가 천장을 향해 치달았다. 회원은 말할 것도 없었고 참석한 내빈들 역시 이미 축제가 돼버린 연수회에 빠져들었다.

필자는 '이브의 교육열과 유리천장(glass ceiling)'이라는 제목으로 교육계 여성승진에 대해 언론에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여성이라고 하여 승진에 불이익을 주는 조항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여성이기에 안을 수밖에 없는 각종 제약조건으로 남성에 비해 승진비율이 현저히 낮다. 이렇듯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제약을 유리천장이라 부른다.

미국은 이를 개선하기 위해 91년 유리천장위원회(glass ceiling commission)를 결성하기도 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배려가 있다.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뽑을 때 홀수 번호는 여성으로 하도록 되어있달지, 한 성의 비율이 70%를 넘지 못하도록 각종 선발규정을 만든달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전남 교육계도 승진자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현재 초등 여교장 비율은 7.7%이며 여교감 비율은 21.5%이다. 최근 5년 동안의 통계를 보면 점점 여성관리직의 비율이 높아 감을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막혀 있었던 유리천장이 여성들의 열정에 녹아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하계연수 대회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92년 10월, 67명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한 한국초등여교장 협의회가 20년 만에 1,036명으로 불어난 것이다. 아직도 전국적으로는 10.8%에 불과하다는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숫자로만 봐도 15배가 성장했고 비율로 따진다면 30배도 넘는 성장을 가져왔다. "천하를 호령하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인데, 남자는 권력을 잡고 여자는 그 밑에서 무릎을 꿇고 있으란 법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조선 중종조의 정란정의 말은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러한 힘의 원천은 하계연수 분위기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일사 분란한 연수회 진행, 진행을 받쳐주는 참여자들의 열띤 호응, 그리고 단연 돋보이는 초청 내빈의 면면이다. 여수 시전초 석교장은 축시 "동은 그렇게 텄다"를 통해 '교단은 유월의 풀 향기처럼 향기롭지만/ 입에선 단내가 날 것 같은 임계점에서/ 여성교육자들은 그 어느 우듬지보다/ 튼실함으로, 강한 리더십으로, 부드러운 미소로/ 대한민국교육을 세계 속으로 이끌어내었다'라고 자찬하고 있다. 그렇다. 초등여교장 비율의 급진적인 증가는 부드러운 미소로 일궈낸 강한 리더십의 결과임이 분명하다.

사회자의 격조와 여성 교육CEO의 열정 속에서 내빈의 덕담이 이어졌다. 장만채 교육감은 눈부신 교장선생님을 한자리에서 뵈오니 자꾸 말이 버벅거린다고 하면서, 오늘 행사비는 도교육청에서 다 지원했는데 소개할 때 박수소리가 약해 서운했다는 말로 환영사를 시작해 뜨거운 박수를 유도해 냈다. 일만 하는 줄 알고 있는 개미집단의 80%가 놀고먹는데 그들이 백해무익한 것 같지만, 적이 나타나면 목숨 바쳐 집단을 구해 내기에 그냥 놀고 있는 것이 아니라며, 초등학교 때 많이 놀리자고 했다. 노는 것은 준비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안양옥 교총회장은 교육감이 말이 버벅거린다고 했지만 자기는 말문이 막힌다면서, 차관은 비행기 타고 왔지만 자신은 차타고 오느라 새벽부터 서둘렀다고 했다. 65년 교총역사에 처음으로 행한 '교권수호를 위한 대국민 기자 회견'을 언급하며, 제 1야당 원내 대표도 와 있고, 제 1차관도 있어 공개적으로 부탁할 것이 많다며, 사회자가 시간을 아껴달라는 주문을 할 때 까지 축사가 아닌 호소를 길게 하기도 했다.

박지원 의원은 지금 민주통합당에서 대선주자를 뽑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는데, 제 1차적으로 교육감과 교총회장은 탈락이라며 이정희 대회장과 박계화 회장은 말씀을 너무 잘 하니 일단 통과라고 해 폭소를 자아냈다. 차관은 비행기로 오고, 교총회장은 차타고 왔다고 했지만, 자신은 어젯밤 기차타고 왔다며, 초등여교장 협의회와 교총에서 건의하는 사항에 대해 적극 검토하겠다는 말로 축사를 대신했다.

박준영 지사는 식전 행사 때 노래 부른 여교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쌍둥이라 할지라도 분명 동생일 것이라는 말로 축사를 시작했다. 자신은 딸이 셋 있는데, 첫째보다는 둘째가, 둘째보다는 셋째가 더 활달하더라는 경험담을 이야기 했다.

교육감이 놀리는 교육의 중요함을 역설했는데 동감이라고 했다. 놀이를 통해 사회를 익히고, 자연을 깨닫고, 성장의 잠재력을 키운다고 했다. 또 전국의 모든 초등학생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먹이자며, 전남의 친환경 농산물은 우리의 몸을 되살린다고 했다. 깨끗한 물, 맑은 햇빛, 신선한 공기, 친환경 먹거리가 시대의 트랜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정종득 시장은 그 어떤 말보다는 교육시장이라는 호칭을 가장 좋아한다며 그 동안 목포교육을 위해 투자한 내용을 설명했다. 자신과 박 의원이 같은 지역구로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니 박 의원에게 부탁할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하라는 말로 웃음을 안겨줬다. 수학여행 코스로 목포만큼 좋은 곳도 없다며, 목포 건어물이 일품이니 수중에 가지고 있는 돈은 한 푼도 남기지 말고 목포에서 다 쓰고 가라고 해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다. 임흥빈 교육위원장은 책자에 나온 축사로 대신 하겠다는 뜻을 진행자에게 전달했다.

환영사와 축사가 한결같이 정이 뚝뚝 떨어졌는데, 한 몸에 세 짐 지고 살아온 생애에 대한 경의의 표현이라 여겨졌다. 전남 목포에서 개최된 한국초등여교장협의회 하계연수는 김응권 제 1차관의 '인재대국'강의와, 김태원 구글코리아 팀 매니저의 특강 '미래를 선물하는 교육', 그리고 결의문 채택과 협회가 제창 순으로 이어졌다.

행사장 이곳저곳에서는 진행을 맡은 모든 분들이 물 흐르듯 움직였다. 좌석 배치도 꼼꼼했고 타 시도를 배려함이 역역했다. 무대 양편에 화분을 늘어놓았는데 큰 화분 옆에 모양이 같은 작은 화분을 크기 순서로 배치함까지 세심함을 보였다. 환영사와 축사 때는 대형 화면에 잘 찍혀진 연사의 사진으로 그들을 맞이했다.

행사장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또 다른 장소에서 행사를 지원하고 있는 또 다른 진행자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부분 부분 하나 하나까지 세심함과 일사 분란함이 연수회 내내 이어져 행사는 물안개마냥 이브의 아름다움으로 피어올랐다. 그것은 마치 교육계에 덮여있는 유리천장 위로 새로운 동이 터 오는 것 같기도 했다.

필자는 주장한다.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배려나 양성 평등의 차원이 아닌, 남성에게는 얻기 힘든 어떤 영역의 탁월한 능력을, 인류발전을 위해 활용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는 차원에서, 여성교원의 승진 문제가 검토돼야하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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