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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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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무명씨
  • 승인 2024.05.0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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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씨

봄날이 왔다. 봄은 희망이고 설레임이다. 섬진강 시인 김용택은 그런 봄의 정서를 이렇게 읊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모두가 농사 준비로 바쁜 봄철이 되었지만 솟구치는 춘심을 주체할 수 없었던 농촌 총각은 호미 대신 그녀의 손을 잡고 섬진강 꽃구경에 나서고 말았다. 봄은 그런 계절이다.

그런데 그런 봄이 누구에게는 절망과 서러움의 계절이었다. 서시,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 4대 미인으로 꼽혔던 왕소군(王昭君)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녀에게 있어 봄은 이른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었다.    

초상화를 보고 하룻밤을 지낼 궁녀를 선택했던 한나라 원제(元帝), 황제의 눈에 띄도록 잘 그려달라고 화공 모연수(毛延壽)에게 뇌물을 썼던 궁녀들, 그러나 뇌물을 쓰지 않은 결과 실물보다 훨씬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 북방 강국 흉노족과 화친하기 위해 흉노의 황제에게 여인을 주기로 한 원제, 궁녀들의 초상화에서 가장 못난 여인을 선택했지만 작별 인사차 온 왕소군을 보고 깜짝 놀란 원제, 모연수의 비리 행각을 알고 분기탱천 목을 잘랐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그렇게 해서 춘삼월 봄날 왕소군은 눈물을 머금고 흉노의 땅을 향해 떠나갔다. 

이러한 사연을 담아 당나라 시인 동방규는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胡地無花草) /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고 읊었다. 왕소군의 애달픈 심정을 노래한 것이‘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니 그녀로 인해 봄은 슬프고도 처량한 계절이 되고 말았다. 
 
봄은 누구에게는 희망이고 설레임이었지만 또 누구에게는 절망이고 서러움이었다. 그러나 봄날의 공통분모는 있다. 그것은 다정다감(多情多感)이다. 고래로 시인묵객들은 춘심을 다정다감이라고 노래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고려말 시인 이조년이다. 이조년을 춘심을 이렇게 읊었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은상 선생도 그의 시‘동무생각’에서 다정다감했던 동무를 춘심에 실어 보냈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나는 흰나리꽃 향내 맡으며/ 너를 위해 노래 노래부른다/ 청라 언덕과 같은 내 맘에/ 백합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게서 피어날 적에/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그런데 보릿고개를 넘던 어려운 시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춘심의 결정판이 있다. 다정다감했던 임의 부재를 서정적인 노랫말로, 애절한 가락으로 승화시킨 노래, 바로 가수 백설희 씨가 부른 '봄날은 간다'가 그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를 봄바람에 휘날리면서 열아홉 풋풋한 아가씨가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서,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서,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서 가는 봄을 아쉬워하고 기약했던 임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 아쉬움과 그리움은 ‘꽃’과 ‘새’와 ‘별’을 두고 맹세했던 임, 그 임의 부재로 인한 정서와 겹쳐지고 더욱 애틋하게 파고들어 다정다감의 절정을 이룬다. 더군다나 이것이 장사익에 이르러서는 더더욱 아름답게 승화되어 춘심의 극치를 이룬다.

이제 그 봄날이 가고 있다.  콩나물시루에 물이 빠지듯 봄날이 순식간에 흘러가 버렸다. 어쨌건 봄날은 우리들의 청춘이자 희망이다. 영랑은 이르기를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고 노래했다. 영랑이 기다렸던 봄은 이미 왔지만 우리들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울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렇다. 봄은 분명 오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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