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첫째는 쉬지 않고 꾸준히 가야 하는 것이 그렇고 둘째는 숱한 좌절과 시련이 들락거리는 것이 그러하며 셋째는 주저앉고 싶은 심정과 골인지점을 향해 처절하게 싸우는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이 그렇다.
마라톤은 시간이 지날수록 포기라는 단어가 수없이 유혹한다. 참고 또 참아서 인내의 한계를 수십 차례 넘나들어야 하는 것은 마치 우리네 인생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고생 끝에 가파른 오르막길을 죽을힘을 다해 넘어서면 툭 트인 시야와 함께 내리막길도 눈에 들어온다. 그때는 체력은 바닥이지만 거짓말처럼 정신은 맑아지고 기분도 상쾌해진다.
지금까지 공식 경기에서만 마라톤 풀코스를 41회 완주하며 꾸준히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이봉주 선수의 대표적인 대회는 아마도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3초 차이로 아쉬운 은메달 수상한 쾌거일 것이다.
그는 이를 시작으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한 번의 기회도 어렵다는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4회 연속 출전했고,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연패, 그리고 세계 모든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라고 하는 보스턴마라톤대회(2001년, 105회) 에서 우승했다. 그는 도쿄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7분 20초로 한국 최고 기록을 갱신했고 그 기록은 21년이 지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끈질긴 병마도 그를 꺽진 못했다
이렇듯 마라톤을 통해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마라톤영웅’ 이봉주는 인생의 마라톤에서 마의 벽이 시작되는 30km를 지나면서 득병해 지금 가파른 오르막길을 달리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확 트인 시야와 함께 편안한 내리막길이 찾아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필자는 지난달 11월 28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이봉주 쾌유 기원 마라톤’대회 현장을 찾았다. 이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대회 전날 전남 함평을 떠나 둘째 딸이 머무는 서울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향했다. 투병 이후 언론에 빠른 쾌유와 안타까운 마음을 글로만 표현하고 정작 만남은 처음 가졌다.
대회 출발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84년 동아마라톤에서 한국 마라톤 최초로 2시간 15분벽을 무너뜨린 전 국가대표 이홍열, 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 출신인 임춘애와 쌍둥이인 두 아들, 육상 남자 100m 최고 기록 10초07 보유자 김국영, 대회를 이끌어 온 부천시육상연맹 회장 노문선, 그리고 참여한 선수들과 팬들에게 배번에 예쁜 글씨로 이봉주를 응원한 캘리그라피 작가 박소윤과 연예인 등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또 이 선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195명의 사람들이 ‘나는 이봉주 페이스메이커다’란 글귀가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쾌유를 빌고 응원하기 위해 대회장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인생은 마라톤’임을 스스로 증명
필자도 “페이스메이커로 함께 트랙을 달리면서 마이크를 잡고 힘찬 목소리로 ‘이봉주 파이팅’을 외치며 “우리의 영원한 마라토너 다시 달리는 그날까지 쾌유를 응원하고 함께하자”고 전했다. 마라톤은 분명 인생의 축소판이다. 42.195km의 코스에는 우리의 인생처럼 ‘희노애락’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봉주 선수에게 특별히 제작한 ‘인생은 마라톤’이 새겨진 도자기를 선물하며 쾌유를 빌었다. 이봉주 선수가 부디 지금의 힘든 시간을 마라톤처럼 잘 이겨내고 완주해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