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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해서 영국 의회를 들여다본다
 나동주∥前 영광교육장
2019/06/07 11:53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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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Theresa May)가 나라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당신은 뻔뻔한 기회주의자야.”


집권당인 보수당 출신 총리 테레사 메이(Theresa May)의 불신임안을 앞두고 여야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습니다. 장소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궁전 내에 있는 영국 하원 의사당이었습니다. 그곳은 날마다 날선 말싸움이 일상화된 혹독한 곳입니다. 조금만 허점이 보이면 신랄한 야유가 쏟아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필자는 이처럼 치열한 언쟁 속에서도 ‘의장석을 점거’하거나, ‘몸싸움’을 하거나, 더 나아가 ‘드러눕는’치졸한 행태는 영국 의회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테레사 메이의 불신임안은 19표 차이로 부결되었습니다. (테레사 메이 총리는 2019년 6월 7일 스스로 사퇴함)

 

2019년 1월 15일 영국 하원은 테레사 메이 총리와 EU 지도부가 합의하여 마련한 브렉트(Brexit) 협상안을 반대 432표, 찬성 202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부결시켰습니다. 230표 차이는 20세기 이래 집권당이 패배한 최악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아픈 것은 보수당의 내부 반란표가 118표나 나옴으로써 현직 총리로서 국정 운영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국회가 소위 ‘당론(黨論)’이라며 일사불란하게 하나의 의견으로 모아 제시하는 집단주의적 표심(票心)의 결정과는 사뭇 대조를 이룹니다.

 

영국 하원 회의장은 긴 벤치형 의자가 서로 마주보도록 좌우로 나누어 배치되어 있습니다. 손잡이도 없는 이 긴 벤치형 의자에 어깨가 겹쳐질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 앉을 수밖에 없는 협소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650명의 하원 의원이 앉을 수 있는 좌석은 427석에 불과해 나머지는 서서 회의에 참여해야 한다니 그저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회의장이 ‘지정석’이 아닌 ‘자유석’인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 국회의원들은 반원형으로 이루어진 본회의장에 명패와 함께 안락한 좌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국회사무처가 연공서열을 고려해 지정해 주는 겁니다. 개인용 컴퓨터며, 회전의자는 기본입니다. 가끔은 졸기도 하며, 개인별 공간이 넓으니 낯 뜨거운 동영상을 몰래 보기도 합니다.

 

합당한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것이 정치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하원 회의장 양쪽 벤치의 가장 앞줄에는 총리와 장관들, 그리고 각 당의 대표들이 착석(着席)합니다. 앞줄에 앉는다고 해서 ‘프런트벤처(frontbencher)’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토론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토론을 주도합니다. 뒷줄은 보통 보직이 없는 초선의원들의 자리입니다. 뒷줄에 앉아있다고 해서 ‘백벤처(backbencher)’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 국회는 반대입니다. 당대표, 원내대표, 다선의원일수록 맨 뒷줄에 앉습니다. 앞자리는 초선의원들과 비례대표의원들이 앉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고참 국회의원들은 팔짱을 끼고 앉아 본회의장을 조망하며, 필요에 따라 작전 지시를 내립니다. 보스(boss)는 카우보이처럼 채찍을 휘두르며 뒤에서 “가라!”라고 외치지만, 리더(leader)는 목자(牧者)처럼 앞에서 “가자!”라고 손짓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영국 하원과 우리나라 국회의 상반된 좌석 구조가 깊은 깨달음을 줍니다.

 

“총리 앞의 빨간 줄이 옅어졌던데 좀 더 진하게 칠하라.”

 

영국 제1야당인 노동당의 한 의원이 외칩니다. 하원 의사당 한 가운데에 두 줄의 빨강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폭이 4m가량 되는 이 공간을 ‘스워드 라인(sword line)’이라 부릅니다. 과거 왕정시대에는 의원들이 검(劍)을 차고 토론에 참석했습니다. 격렬한 토론 중에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칼부림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 자루의 검이 서로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뜨려 놓기 위해 그은 선입니다. 상대방과의 매우 신랄한 토론을 감안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것입니다.

 

노동당 의원의 빨간 줄을 진하게 칠하라는 말은 의역(意譯)하면, ‘칼 맞을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 됩니다. 찬 기운이 돕니다. 그러나 영국 의회 역사상 그 빨간 줄을 넘은 의원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의 국회의사당은 그들 스스로의 용어대로 소위 ‘빠루’가 등장하는 등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더군다나 국회 사무실의 팩스 연결선조차 훔쳐가는 범죄적 행동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이 추상(秋霜) 같이 작동되어야 합니다.

 

영국 하원 의원들은 서로 잡아먹을 듯 싸우지만, 신사의 나라라는 자부심 또한 큽니다. 예의를 갖춘 질문에 예의를 갖춰 화답(和答)합니다. 영국 외교장관인 필립 하몬드(Philip Hammond)가 발언하고 있을 때, 반대파인 노동당의 스티브 맥케이브(Steve McCabe) 의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묻습니다. “장관님, 혹시 양보하실 수 있나요?” 자신이 중간에 끼어들어 발언해도 괜찮느냐는 물음입니다. “더 좋은 제안이 없을 때, 나는 늘 존경할만한 신사에게 양보하지요.” 필립 하몬드는 흔쾌히 발언권을 넘기고 자리에 앉습니다. 이에 맥케이브 의원은 “정말 친절하시군요.”라고 화답합니다. 이처럼 영국 하원에서는 누군가 발언하는 동안에는 다른 사람이 발언권을 뺏어올 수 없지만 양보(give way)를 구하면 예외로 인정되는 관례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룰(rule)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는 정해진 시간을 초과한 발언자의 발언을 중지시키기 위해 마이크를 꺼야 하고, 이에 질세라 꺼진 마이크를 붙잡고 기어이 자신의 발언을 이어가는 저돌적인 모습, 그리고 심지어는 상임위원장석으로 돌진하여 의사봉을 약탈하는 불미스러운 진풍경을 심심찮게 목도(目睹)하곤 합니다. 사실 우리의 입법부에는 법이 있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법 위에 군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고 불행한 국민입니다.

 

영국 하원 의원들은 의회에서의 말싸움만큼이나 치열한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자신과 가족을 돌볼 새가 없습니다. 연구하고 공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한 정치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당시 보수당 초선 의원 중 17%가 당선 후 3년 이내에 이혼하거나, 별거하고 있다는 결과는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이러한 희생은 ‘나’보다는 ‘국가’가 우선되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많은 국사(國事)에 대하여 깊고, 넓게 파악하고 회의에 임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상대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설득합니다. 결국은 의원들 각자가 영국을 잘 사는 민주 복지국가로 발전시키는 초석을 마련하는 작은 밀알로 승화됩니다. 그야말로 ‘민의(民意)의 대변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습니까?  아! 그러나 허구한 날, 피 터지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위정자(爲政者)들을 생각하니……. ‘자괴감’이란 이런 것이었습니다.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크라크(Clark)의 일갈(一喝)이 자꾸만 여의도를 향합니다. 휑한 찬바람이 뒤따라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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