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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5일! 과연 우리의 ‘광복절’인가?
 나동주∥前 영광교육장
2019/07/25 16:2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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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7월 26일, 독일의 포츠담에서 미국 대통령 트루먼과 영국 총리 처칠 그리고 중국 총통 장제스(蔣介石)가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일본에 대해 항복을 권고하고 제2차 세계대전 후의 대일 처리 방침을 표명하고자 열린 이 회담을 이른바 ‘포츠담 선언’이라 일컫습니다.


이 선언은 모두 13개 항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일본의 무모한 군국주의자들이 세계 인류에게 지은 죄를 뉘우치고, 이 선언을 즉각 수락할 것을 요구하는 전문(前文)이 제1항부터 제5항까지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제13항은 그 역사적인 일본 군대의 ‘무조건 항복’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선언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일본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라는 트루먼 대통령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이 선언의 이행에 미온적(微溫的) 태도를 보이자 결국은 1945년 8월 6일 8시 16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합니다. 원자폭탄 투하라는 엄청난 재앙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계속 버티자 3일 후인 1945년 8월 9일 11시 2분에 나가사키에 또 한 발의 원자폭탄을 투하하기에 이릅니다. 이로써 일본은 완전히 전의(戰意)를 상실합니다.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5일 후인 1945년 8월 14일에 일본은 별수(別數)없이 포츠담 선언 수용을 밝혔고, 8월 15일에 히로히토(裕仁, Hirohito) 일왕은 극히 일부만 청취가 가능한 라디오를 통해 황실 언어로 항복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8월 16일에 전 일본군에게 정전(停戰) 명령을 시달합니다.


일본으로써는 치욕의 1945년 9월 2일에 일본 토쿄만에 정박 중이던 맥아더의 미주리함(U.S.S‘Missouri’, BB-63)에서 천황을 형식적 인물로 전락시킨다는 내용 등을 골자(骨子)로 한 항복문서에 공식적으로 서명하기에 이르는데, 항복문서 조인식장에 지팡이를 들고 서 있는 사람이 바로 A급 전범인 일본 외무대신 시게미츠 마모루(重光葵)로서 1932년 윤봉길의사의 의거(義擧)로 다리에 중상을 입었던 자입니다. 이로써 파란만장했던 피의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긴 채 그 어두운 장막을 거두어들입니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항복 문서에 서명한 날인 9월 2일을 ‘대일 전승 기념일(Victory over Japan Day)’로 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이 빼앗긴 땅과 주권을 다시 찾았다는 의미의 ‘광복절’을 8월 15일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습니다. 과연 옳은 일입니까?

 

일제강점기 35년 동안 일제는 우리 민족에게 대일본제국의 국민이며, 마음을 다해 천황폐하(그들의 용어대로)에게 충의(忠義)를 다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소위, 황국국민서사(皇國臣民誓詞)를 암송하도록 강제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왕이 다스리는 나라의 보잘 것 없는 신하로 취급된 우리 민족에게 일왕을 신격화시키는데 혈안(血眼)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일왕은 사람이 아니라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으로 무장된 결코 ‘바로 볼 수 없는’ 신(神)으로 각색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 민족은 일왕을 영원히 칭송하고 기리자는 기미가요(君ガ代)를 아무런 감흥 없이 억지로 불러댔다고 하지만, 또한 일왕과 일본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민족의 원흉(元兇)이며 그래서 늘상 타도의 대상이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기나긴 35년 식민 기간 동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혹은 습관처럼 일왕을 감히 범접(犯接)할 수 없는 인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반복되는 습관이 하나의 인식으로 굳어지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그들의 주장대로 다른 사람도 아닌 이른바 신과 동격(同格)이라는 일왕이 항복 선언을 한 날이 얼마나 역사적 의미를 깊게 내포하고 있겠는가 하는 피지배 계급의 입장에서 8월 15일의 상징성을 확장하여 해석하였을 것입니다. 결국 8월 15일이 우리의 광복절이 된 연유는 순전히 일왕을 비롯한 악랄한 식민 지배의 서슬 퍼런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 우리의 피폐(疲弊)된 사상과 그로인해 생성된 그릇된 가치관 그리고 주관적 판단이 결여된 경사(傾斜)진 역사적 안목이 빚어낸 참사(慘事)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때까지 국제법상 공식적인 우리의 광복은 마무리되지 않았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소수의 몇 명만이 청취한 그 항복 선언은 단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하며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상황은 아직 도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결국 8월 15일은 일왕의 항복 선언이 있었을 뿐이고, ‘무조건 항복’의 절차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러기에 1945년 8월 15일은 아직 미완성의 광복이 존재할 뿐입니다.

 

필자가 오래 전부터 8월 15일이 우리의 진정한 광복절인가를 화두(話頭)로 품고 의문을 제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광복절은 최소한‘8월 15일’만은 아니어야 합니다. 자칫 이날을 광복절로 인식하게 되면 일왕의 존재를 인정하는 엄청난 역사적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그 원한의 일본과 경제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미가제 특공대에 지원해서 그의 조국, 일본을 위해 자결하지 못한 것이 천추(千秋)의 한이 된다는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가 아버지인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는 우리나라를 향해 연일 경제적 선전포고를 하고 있습니다. 무례하고 버르장머리 없습니다. 왜구의 추잡한 근성이 여기저기서 목격됩니다. 품격은커녕 악취 진동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제2의 촛불혁명입니다. 굵고 오래가야 이깁니다. 지금 우리는 또하나의 독립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비장하고 엄중한 시기입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 숙여 사죄하는 아베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있을 때까지 우리는 하나로 뭉쳐야 합니다. 그날이 진정 제2의 광복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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