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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이네 살구나무
 류제경∥前 고흥교육장
2019/04/02 14: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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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경 교육장.jpg

우리는 대개 시조란 무엇인지 잘 알지만 동시조라면 다소 생소한 말로 다가온다. 시조는 초장, 중장, 종장의 3장 6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조금은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시조의 형식에 동심의 내용이 담겨진 것이 동시조이다. 즉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가락에 재치 넘치는 동심적 상상력을 시적 이미지로 빚어낸 것을 동시조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동시조 중에 ‘분이네 살구나무’라는 동시조가 있다. 살구꽃이 흐트러지게 피는 이 계절과 딱 들어맞는 동시조이다. 모 일간지에 정완영(1919~2016)이 쓴 동시조 ‘분이네 살구나무’(동아일보, 2019년 3월 30일 나민애의 시가 깃든 삶)가 소개돼 있었다. 살구나무를 좋아하는 내가 이것을 놓칠 리 없다.


분이네 살구나무 / 정완영

동네서
젤 작은 집
분이네 오막살이


동네서
젤 큰 나무
분이네 살구나무


밤사이
활짝 펴올라
대궐보다 덩그렇다.


내가 이 동시조와 살구나무를 좋아하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은 어린 시절 우리 옆집에 정말 대궐만큼이나 큰 살구나무가 있었고, 나를 비롯해 우리 조무래기들은 그 살구나무 덕을 무척이나 많이 봐서 그렇다. 백년은 훨씬 넘을 것 같은 고목인 그 살구나무에 엄청나게 많은 살구가 열렸고 길에 누렇게 떨어진 살구는 배고프던 시절 우리들의 훌륭한 간식이 되어 주었다. 아침에 눈이 벌어지기가 무섭게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만사 다 제쳐두고 살구나무 밑으로 달려가곤 했으니까.


다음으로 이 동시조가 예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소개돼서 그렇다. 나도 그랬지만 당시 선생님들은 교과서에 나온 시나 시조는 무조건 외우게 했다. 이유가 있다. 그 당시 시험에는 시나 시조 전문을 제시하고 한 문장이나 한 단어를 괄호로 쳐놓은 다음 그 안을 채우라는 문제가 출제되곤 했으니까. 그래서 모든 시나 시조를 아이들이 암송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선생님들의 인내와 교편이 많이도 필요했다. 근데 이 동시조는 선생님들이나 아이들의 속앓이를 그렇게 많이 요구하지 않았다.


외우기 쉽고 재미있고 생활 주변의 이야기여서 아이들이 곧잘 외웠으니까. 그래서 나를 비롯해 사명감이 강했던 선생님들은 이 동시조가 상당히 고마웠던 거다. 마지막으로 이 동시조가 내가 좋아하는 노래 18번과 정서적으로 공감대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노래방 열풍 시절 한 잔하고 그곳에 가면 나는 으레 라훈아의 ‘18세 순이’를 열창하곤 했다. 노래 가사는 이렇다.


18세 순이 / 나훈아
살구꽃이 필 때~면 돌아 온다~던 내 사랑 순이~는 돌아올 줄 모~르고 서쪽하늘~ 문틈~새로 새어드는 바람에 떨어진 꽃냄새가 나를 울~리네
가야해 가야해 나는 가야해 순이 찾아 가야~해 가야해 가야해 나는 가야해 순이 찾아 가야해 음~~~ 누가 이런 사람~을 본적 있나요 나이는 십팔세~ 이름은~ 순이


정서적 공감대라 함은 나에게 있어 ‘순이’와 ‘순애’가 동일인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밝히지만 옆집 살구나무집 아짐딸 순애를 ‘좀 좋아했던 것’ 같다. 선생 출신이고 점잖은 체면에 ‘좋아했다’는 직설적 표현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밤이면 밤마다 우리 집으로 텔레비전을 보러 왔던 살구나무집 딸래미 순애를 어찌 잊을 수 잊겠는가.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18세 순이’를 18번으로 즐겨 부르는 이유를 추억 속의 살구나무집 순애를 그리워해서 그랬다고 공격해도 사실 할 말이 없다. 그때 노래방에 가서 ‘18세 순이’를 부를 때 가사 속의 순이를 은근슬쩍 순애로 바꾸어 부르지 않았냐고 다그친다면 그에 대한 답변은 회피하겠다. 결국 나에게 있어 살구나무와 순이와 순애는 동일체이니 어찌 이 동시조를 좋아하지 않겠는가.      


나민애는 이 동시조에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였다.
"정말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아는 마음이 이 시를 만들었다. 분이네 집은 동네에서 제일 작고 아마 살림도 재산도 보잘 것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인은 가장 훌륭한 살구나무를 그 집에서 찾아냈다. 동시에 세상 가장 초라한 집은 가장 아름다운 대궐이 되었다. 봄은 살구꽃과 함께 찾아온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봄은 어떻게 찾아올까. 분이네 오막에서 초라함 대신 살구나무를 발견하는 데서 찾아온다. 이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오늘,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활짝핀 살구꽃처럼 봄이 가득한 날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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