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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소녀
 나동주∥前 영광교육장
2019/03/28 10:47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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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행 기차는 8시에 떠나요. / 11월은 내게 영원히 기억 속에 남으리.
함께 나눈 시간들은 밀물처럼 멀어지고 / 이제는 밤이 되어도 당신은 오지 못하리.
기차는 멀리 떠나고 당신 역에 홀로 남았네. / 가슴 속에 아픔을 남긴 채 앉아만 있네.

 

그리스 국민가요 '기차는 8시에 떠나네'(The Train Leaves At Eight)의 노랫말입니다. 이 노래는 그리스 민족 운동가이자 작곡가인 미키스 데오도라키스(Mikis Tresderakis)의 곡으로써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한 그리스의 한 젊은 레지스탕스(resistance)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카타리나로 떠나 돌아올 줄 모르는 청년 레지스탕스를 기다리는 여심(女心)을 애처롭게 그리고 있습니다. 눈발 속절없이 내리던 11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인디언 아라파호족(Arapaho)은 11월을 ‘모두가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 부릅니다. 11월의 텅 빈 들녘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여백과도 같은 달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한 달 남은 12월보다 더욱 절박감을 주는 달이 11월입니다. 그래서 11월은 마냥 쓸쓸하고 절실한 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어긋난 사랑으로 시작된 지난(至難)한 자아 탐색의 여정을 풋풋하고 생기 넘치게 그려낸 한스 에리히 노삭(Hans Erich Nossack)의 소설 '늦어도 11월에는(Sptestens im November)'는 자아상실의 시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산업사회의 냉엄한 메카니즘(mechanism)에 도전한 인간의 비극을 처절하게 대변하고 있습니다. 샤르트르(Sartre, Jean Paul)의 극찬을 받은 이 소설 역시 쓸쓸한 11월이었습니다.

 

‘꽃들은 시들어도 슬퍼하지 말아요. 때가 되면 다시 필 걸 서러워 말아요.’를 부르며 하얀 나비가 되어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난 천재 가수 김정호는 33세로 요절(夭折)했습니다. 하얀 나비대신 하얀 눈이 내리던 그 날, 1985년 11월이었습니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워 놓고 /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
밤은 깊어가고 산새들은 잠들어 / 아무도 찾지 않는 조그만 연못 속에
달빛 젖은 금빛 물결 바람에 이누나.

 

김정호가 1974년에 발표한 ‘이름 모를 소녀’는 뭇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김정호를 정상 가수로 등극하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그의 대표작인 이 곡은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했던 선배의 사촌동생 이영희를 그리며 만든 노래였다고 합니다. 이 노래가 발표되자 짝사랑을 눈치 챈 이영희가 김정호를 찾아가면서 3년의 달콤한 연애가 시작되었고, 결국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광주가 고향이며, 담양이 외가(外家)인 김정호의 노래는 호남이라는 지리적 인연뿐만 아니라 혈연으로도 남도와 절절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의 외조부는 창작 판소리의 대가 박동실이며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소리를 전수받아 대중화에 기여한 박숙자 명창이고 외삼촌은 아쟁 명인 박종선입니다. 김정호 음악 기저에 남도의 정한(情恨)이 반영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한 이런 연유로 인해 ‘가장 한국적인 목소리’라는 일련의 평가 또한 외가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김정호가 생전에 작곡한 50여 편의 곡에는 그리움, 고독, 슬픔이라는 국악의 공통 정서가 자리합니다. 가요에 국악적 요소를 접목시킨 그의 노래는 한(恨) 서린 음색과 어우러져 특유의 내면 깊숙이 저미는 신비의 빛을 발합니다. 그러기에 가슴을 후비는 그의 노래는 징소리보다 더한 긴 여운을 남깁니다.

 

김정호가 만든 ‘작은 새’와 ‘사랑의 진실’은 임창제와 이수영이 결성한 듀오그룹 <어니언스>를 순식간에 스타덤에 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룹 '4월과 5월' 멤버로도 활동한 김정호는 오승근과 임용제가 만든 듀오 그룹 <금과 은>의 히트곡 ‘빗속을 둘이서’를 작곡함으로써 가수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확보하게 됩니다.

 

고인이 된 가수를 현재의 무대로 불러오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대중 가수의 죽음은 대중의 기억에서 ‘잊혀짐’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유행을 먹고사는 대중 문화는 결코 과거의 시간에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허름한 방천시장 골목을 전국적으로 손색없는 활기찬 거리로 탈바꿈시킨 대구의 '김광석 거리'를 생각합니다. 향년 31세로 김정호보다 11년 뒤에 세상을 떠난 김광석은 대구의 자랑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문화 자산의 가치를 더욱 가치롭게 배가(倍加)시킨 대구시가 부러운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부끄러운 이유입니다.

 

무릇 잊혀져가는 우리 고장 출신 천재 가수 김정호를 광주로 혹은 담양으로 다시금 불러내야 합니다. 건물마다 김정호의 혼으로 채색하고, 거리마다 김정호의 열정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남도의 정서와 소리, 혼을 지닌 김정호를 다시금 보석으로 빛나게 해야 합니다. 모두가 11월이었던 미키스 데오도라키스가 한걸음에 달려오고, 인디언 아라파호족이 집단으로 초대되고, 한스 에리히 노삭이 기웃기웃 흥에 겨운 숨막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남도인(南道人)들이 소위 '김정호 거리'에서 ‘이름 모를 소녀’를 저마다의 음색으로 읊조릴 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바람 불고, 구름 많이 낀 오후 5시 쯤 11월 어느 날에 한바탕 축제라도 벌여야 합니다.

 

그들만의 아련한 ‘이름 모를 소녀’를 추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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