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22 17:40  제보/광고문의 : 010)3605-4420
주씨에 대하여
 류제경∥前 고흥교육장
2018/12/18 11:08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미투데이로 기사전송 다음요즘으로 기사전송

류제경 교육장.jpg

연말이다. 곳곳에서 망년회니, 송년회니 하며 한 해를 떠나보내는 행사로 바쁘다. 오늘은 망년회고 내일은 송년회란다. 오늘은 초등학교 동창생 모임, 다음날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로 계속된다. 그리고 직장 동료, 골프 모임, 배구 동호회 등등으로 모임은 계속 이어진다. 그야말로 술꾼들에게는 연중 가장 살맛나는 시절이 바로 지금이다.


그런데 열심히 모임판을 돌아다니는 그들에게 망년회와 송년회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공통점은 알겠지만 차이점은 모른단다. 공통점은 이구동성으로 “술”이다. 그렇다면 이 둘은 어떻게 다를까. 망년회는 일본식 표현이어서 한때 사용하지 말자는 운동이 일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인터넷을 뒤져보았더니 공감 가는 글이 있었다. 


"일단 한문으로 풀어보면, 망년회는 忘年會, 송년회는 送年會로 차이가 있다. 구체적으로 풀어보자면 망년회의 “망”은 ‘잊을 망(忘)’을 쓰며 곧 지난 한해를 모두 깡그리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 송년회의 “송”은 ‘보낼 송(送)’자를 쓰는 데 지난 한해를 돌이켜보며 한해를 정리하고 보내자는 뜻으로 풀이가 된다. 망년회는 과거를 반성함 없이 술로 모두 잊어버리자는 뜻으로 쓰이기 때문에 좋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아니다. 최근에는 망년회라는 단어를 쓰지 말자는 운동도 전개되었다. 역시 송년회라는 단어가 더 고상하고 지난 한해를 정리하자는 좋은 취지를 담고 있다"


상당히 공감이 가는 글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망년회보다는 송년회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 송년회하면 항상 연상되는 단어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술’이다. 주당들이라면 으레 ‘송년회’라고 쓰고 ‘술모임’이라고 읽는다. 술과 관련해서 그동안 여러 주법들이 주류계를 중심으로 회자되고 있다. 후래자삼배(後來者三盃)도 그 중의 하나이다. 술판에 늦게 도착한 사람은 거듭 석잔을 마셔야 한다는 뜻인데 서로 보조를 맞추자는 의미이다. 술판에 가야만 들을 수 있는 말이 있는데 그건 건배사다.


언젠가 장례식장에서 오랜만에 만난 동료들과 습관적으로 술잔을 마주쳤다가 순간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신 분을 축하해 버린 것이다. 건배(乾杯)의 한자 의미는 마를 건(乾), 잔 배(杯) 즉, 잔을 비운다는 뜻이다. 건배를 할 때는 으레 건배사를 하고, 그 다음 술잔을 들어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며 서로의 잔을 부딪힌 후 술을 마신다. 그럴 때 써먹을 건배사 한 두 개는 준비하고 있어야 분위기를 망치지 않는다. 나는 가장 무난한 구호인 ‘위하여’를 사용한다. 이유는, 좋은 것들을 많이 들어도 금방 잊어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절대 잊지 않을 좋은 건배 구호 하나를 배웠다. 그래서 지금은 그것을 주로 사용한다. 그것은 ‘노발대발’이다. ‘노발’하고 선창하면 ‘대발’로 화답한다. 술판에서야 모르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 뜻을 설명하지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다만 주로 나이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구호인데 젊은이들도 자신의 미래를 응원한다는 의미에서 앞으로 많이들 애용해 주었으면 좋겠다. 


술이 날개 달고 활개 치는 이 시기에 술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그건 ‘반성’이다. 술 먹고 후회 안한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술에 당하고 난 술꾼들은 ‘이제 다시는 술 안 마신다’는 거짓말을 반성이라고 으레껏 내뱉는다. 그러고는 그 말의 물기도 마르기 전에 또 마신다. 그래서 술과 반성은 뗄래야 뗄 수 없는 한 통속이요 한 몸이다.


고금을 통해 우리의 문학사에서 가장 반성을 많이 한 위대한 시인이 있다. 그는 살면서 반성을 하도 많이 해서 그의 시(詩) 제목도 반성에 일련번호를 붙여놓았다. 나는 그 시인의 ‘반성’을 828번까지 보았다. 삶의 애환이 온통 시 속에 녹아 있고 그의 삶 자체가 시이며 반성이다. 그는 김영승 시인이다. 술에 관한 시 중 단연 빼어난 시로 나는 김영승 시인의 「반성 16」을 꼽는다.

 

[반성 16 / 김영승]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 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이 위대한 주당을 이길 주군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반성 21’에서 술과 시인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임을 토로하고 있다.


[반성 21]
 친구들이 나한테 모두 한마디씩 했다.
 너는 이제 폐인이라고
 규영이가 말했다.
 너는 바보가 되었다고
 준행이가 말했다.
 네 얘기를 누가 믿을 수 있느냐고
 현이가 말했다.
 넌 다시 할 수 있다고
 승기가 말했다.
 모두들 한 일년 술을 끊으면
 혹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술 먹자,
 눈 온다,
 삼용이가 말했다.


시인은 602번째 반성에서 술에 관한 이런 철학도 내비치고 있다.

 

[반성 602]
 나는 이제 <술>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절제>라고 부르겠다
 어제는
 <절제>를 무절제하게 마시고
 뽀옹
입으로 방귀 뀌는 소리를 냈다
액체의 속성은 흐름이다
그리하여
액체는 다 무절제하다
물도 눈물도 땀도 정액도
그리고 술도 피도.
수도꼭지처럼 자지(cock)를 달고
계량기를 달고
한 달에 한 번씩 검침하여
돈 받아 가라
눈물도 땀도
정액도.


이 시를 읽다보면 옛날 교직 초창기에 봉급날이면 어김없이 외상값 받으러 입술 시뻘겋게 바르고 학교로 찾아오던 술집 각시 생각이 난다. 그리고 외상값 갚으면 으레 내놓던 뱅애주(?)도 생각난다. 참으로 인간적인 모습들이었다. 이젠 카드가 나와서 그런 재미들을 다 앗아가 버렸지만 되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시절이었다. 김영승 시인은 2001년 10월 6일자로 술을 끊었다니 이젠 그의 새로운 반성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술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말이 별로 없는 친구에게 아무리 좋은 약을 줘도 별말을 다하게 할 수는 없다. 심지어 자신의 1급 비밀까지도. 그러나 술은 이 일을 해내고야 만다. 서로 간에 쌓인 감정의 응어리를 녹여내고 속내를 드러내게 만드는 술은 그야말로 불로초 다음가는 천하의 명약이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은 술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다.


김영승 시인처럼 반성으로 얼룩진 연말이 되지 않도록 절제와 자제의 지혜를 발휘해야 겠다. 이제 2018년 무술년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다산과 풍요의 상징인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을 날도 머지않았다. 새해에는 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 류제경 ]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mapak69@naver.com
호남교육신문(www.ihopenews.com/) - copyright ⓒ 호남교육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BEST 뉴스

호남교육신문 BEST 뉴스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고 있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정기구독신청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호남교육신문 | 광주광역시 북구 북문대로 242번길 46 상가동 202호 | 등록번호 광주 다-00199 발행인 이명화 | 편집인 김두헌 | 청소년 보호 책임자 김두헌 | ☎ 062-524-1110,2220 FAX 062-234-8830 | E-mail:mapak69@naver.com Copyright ⓒ 2007-2013 호남교육신문 All right reserved.

    호남교육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